'mAison de 슈풍크'에 해당되는 글 61건

  1. 2010.04.21 봄이 너무 봄 같아서 (19)
  2. 2010.04.14 사진이 좋군요 (10)
  3. 2010.04.10 lovesong (6)
  4. 2010.04.07 Somnambulist (8)
  5. 2010.04.04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7)
  6. 2010.03.30 두 개의 진실 (12)
  7. 2010.03.30 손을, 찍다 (6)
  8. 2010.03.26 しろ (4)
  9. 2010.03.19 그래도 이사랑이 나는 (10)
  10. 2010.03.16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봄이 너무 봄 같아서

2010.04.21 21:17 from luMière




 

 

 

 

 

 

 

  햇빛이 너무 쨍하여, 그랬나

  라고 생각했지, 아마도 그것만은 아니었을 거야

  봄이 정말 봄 같아서,

 

  春來不似春 쓰디쓴 그 말을 수첩에 적어넣던 어김없는 봄들이

  창밖의 풍경처럼 빠르게 스쳐갈 때, 난 그만

  엉엉 울 것 같았지, 새삼스럽게도

 

  봄이 너무 봄 같아서.

 

 

 

 

 

 

 

 

 

 

 

       

미스티블루 - Spring f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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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좋군요

2010.04.14 14:56 from morceAu
 

01 사진이 좋군요,


그러자 그가 짧게 답했다.

후보정일 뿐입니다.


아, 하고 나는 다른 무엇을 떠올렸는데

그건 누군가를 찍은 몇 장의 사진이었고

아주 그럴 듯한 후보정을 거쳐

내 생애 최고의 풍경으로 남아버린 어떤 장면에 관한

인공적인 모놀로그였다.


이것이 당신의 사랑이군요,

그러자 내가 짧게 답했다.

후보정일 뿐입니다.



02 나는 낯선 이들을 웃기고 난 뒤 안도하는 사람.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은 수난자들의 질문입니다'라는 알료사의 말에

밑줄 긋는 사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첫사랑. 나는 내가 읽지 않은 필독도서,

나는 나의 죄인 적 없으나 벌이 된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창 앞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 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김애란  ‡  영원한 화자 中


 

03 죽는 순간 아주 살짝,

 


키가 준다고 생각하는 부족이 있다

안녕히! 나는 찢어진 당신 그림자에 인사한다

심장에 흰 제비꽃 무덤이 돋은 나를

내 그림자는 알고 있고

풀 무덤의 무게만큼 가벼워진 그림자를 나는 사랑한다

그러니 안녕히! 당신 그림자의 키를 잰 최초의 여름이

풀꽃처럼 웃으며 지나가는 저녁이다

찢어진 그림자가 사뿐히 공중에 떠오른다

가벼워진 당신 그림자에 드리는 첫 입맞춤,

걱정 말아요 아주 살짝, 키가 주는 것일 뿐

당신은 잘 싸웠어요

잘 사랑했어요

쉼표처럼.

살짝 키가 주는 것

쉼표처럼.

살짝 쉬는 것

 

김선우  ‡  그림자의 키를 재다 中

 

 

04 당신이 내 영혼을 빨대로 빨고 있어요.


안나 아흐마토바  ‡  당신이 내 영혼을 中

Anna Andreyevna Akhmatova. 1889-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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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song

2010.04.10 21:31 from songErie

 

 

 

 

 

오지은 - 당신이 필요해요

 

 

 

I need love 愛されたい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는 필요없어 오직 너에게만

내가 필요로 할 땐 그게 한밤중이라 해도

특히 오늘같은 새벽엔 어서 날아 여기로 다가와 내 머릿속

저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를 쫓아줘

그 큰 손으로 내 볼을 감싸줘 콧잔등 주름에 입 맞춰줘

뒤에서 감싸 안아줘 바보 같은 농담도 해줘 끊임없이 날 괴롭혀줘

 

I need love 話したいの

둘만의 이야기를 내 머릿속부터 발끝까지 모든걸 알아줬으면

사랑한다는 말은 그게 한 순간이라 해도

당신의 눈과 마음과 몸까지 전부 나에게 주세요 날 두고서

혼자서 저 세상으로 돌아가면 안돼

한심하다는 말 듣는다 해도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보다 행복할 수는 있잖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나와 꿈속에 있어줘

 

내가 다른 생각 못하게 그런 무서운 생각 안하게

마음 속으로 울지 않게 그 커다란 두 손으로 날 데려가 여기서 꺼내줘

제발.

 

 

 

 

 

 

 

 

 

 

 

 

 

 

 

 

 

 

 

 

 

나 이승기 안 좋아하는데

나랑 결혼해줄래, 같은 노래에 가슴 뛴 건 모조리 당신 때문이야,

생각만해도 낯부끄런 아이유의 있잖아, 같은 노래를 불러버린 것도 당신 때문이야,

 

하지만 정말로 당신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건 이런 노래.

상큼발랄과는 거리가 먼 노래.

사랑한다는 말은 커녕, 새나 쫓아달라는 이상한 여자의 노래.

주말 야근을 마치고 저녁도 못 먹은 당신이

배고프다고 배고프다고, 두 시간 거리를 과속으로 달려오는 동안

내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듣고 있는 노래.

당신을 기다리는 게 즐겁고 기쁘고

그런데도 마음이저려서 아마도 당신 앞에선 영영 부르지 못할 노래.

백화점 꼭대기 게임센터 오백원 짜리 노래방에서

혼자서 부르고 말 노래. 아 그러나 숨길 수 없이,

 

당신을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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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nambulist

2010.04.07 12:20 from songErie

 

 

 

 

 

 

 

 

 

 

 

 

 

 

 

 

 

 

 

 

 

 

Ralph Gibson  <The Somnambulist>  1970.

 

 

 

 

 

내가 꿈속에서 한사코 허공을 끌어안으며

당신, 이름을 불렀다면

그것은 영원히

 

영원히 내가

당신,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꿈속에 있지 않고

나는 몽유병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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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 뒤에서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하지만 돌도 더위도 추위도

또한 당신도 막을 수는 없지

내 맘대로 내 속에서

마치 계절이 오가며

땅 위에 숲을 만들듯

내가 당신을 부쉈다 다시 맞추는 것을


Jules Supervielle. (1884-1960)

 

 

 


H. 나는 당신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함축한 이니셜이 되었을까.

생략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의 내 마음에는.

다시는 부연 설명될 수 없는 것들, 세세히 풀어낼수록 초라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다시는 당신을 쓰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한다. 어쩌면 그 약속을 깨기 위해

나는 이 자발적인 유배를 택했을 것이다. 때로 추억에서 힘을 얻는다. 그런 뒤에는

절망도 역시 얻는다. 부쉈다 다시, 부쉈다 다시, 그렇게 얼기설기 맞춰진 당신의 조각들은

흉물스러워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손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결국 안고갈 수밖에는 없음을 안다.

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구조의 방을 생각한다.

아무리 반복해서 그려보아도, 두 개의 창이 달린 바닥이 없는 삼각뿔. 이다.

존재하지만 사람이 머물 수 없는 방. 꿈속에서 푹.. 하고 두발이 허공으로 꺼질 때,

나는 겨우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내가 아직도 바닥없는 그 방에 있다면 그것은 분명

꿈일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웃고 또 내가 운다면, 그것 역시

내손이 부쉈다 다시 맞춘 웃음이고 울음일 것이다. 세 개의 벽과 두개의 문 뒤에서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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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진실

2010.03.30 22:18 from luMière

 

 

 

 

 

 

 

 

 

 

 

 

 

 

 

 

 

 

 

 

 

 

 

 

 

 

 

 

 

 

 

 

 

 

 

 

 

 

 

 

 

 

 

 

 

 

 

  물고기들이 날고 있었는지,

  그들이 하늘을 걷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겠어?

 

  틀림없이 하나만 옳고 하나는 틀렸다는 말은,

  그때의 내가 원한 것이 아니란 것을

  너는 몰랐고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테지,

  하지만 모를 거라는 사실이 슬프다기 보다

  몰라도 상관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랬다, 그 사라진 절터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말야.. 라고 설명할 니가 없다는 사실이

  어쩜 놀랍지도 않을까, 물속의 잉어들이 사람을 두려워 않듯이 말야

  이제 우린 서로 다른 세계에 있고, 그래서

  두 개의 기억이, 두 개의 상처가

  모두 다 진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고마웠다고,

  나는 수면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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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찍다

2010.03.30 19:32 from paRamnésie

 

 

 

 

 

 

 

 

 

 

 

 

 

 

 

 

 

 

 

 

 

 

 

 

 

 

 

  손을 찍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된 습관이야

 

  우연히 펼친 어느 잡지에서 방송작가 송지나의 손을 봤을 때,

  인터뷰를 하면서도 얼굴을 보이기가 부끄럽다고

  겨우 실려있던 단 한 장의 사진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그냥 그의 손이었어, 그런데 그 빈 손에서

  그 사람 전체가 보인다는 느낌, 처음이었어

  그 이후로도 나는 송지나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알려는 마음도 들지 않았어, 그손이 말해준 것으로

  내게는 충분했으니까, 말이야

 

  이 편협한 습관이, 올봄 이렇게 당신 손을 찍게했구나

  뽀얗지도 않고 길이도 짧다고 늘 당신으로부터 구박만 받는 당신 손이,

  내 손등의 오래된 흉터를 안타까운 듯 덮어주던 당신 손이,

  나는 너무 좋아, 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워, 당신 손을 잡는 대신

  말없이 당신 손을 찍는다, 도대체 뭘 그리 찍어대는 거야? 라고 당신이 물어도

  마냥 웃으며 셔터를 누를 뿐이었는데,

  그 순간 내 손등의 흉터가 살아나기라도 한듯 징.. 하는 쓰라림을 느꼈어

  그건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한다해도 이해할 사람이 없겠지

  그러니 당신에게도 그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을 게, 그냥

 

  당신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 그것으로 내가 더불어 웃게 되는 것,

  거기까지만 말해도, 당신은 알 테니까

  당신 손이 당신 전체를 말하 듯이.. 이 글이 내마음 전체를 말해줄 테니까..

  점자를 읽듯 우리가 서로에게 읽어낸 어떤 말들을

  흉터를 가진 손등이, 땀이 밴 손바닥이, 손끝의 지문이

  나보더 더 오래 기억해줄 거라 생각하니, 아 이토록 나는 기뻐

  긴장이 배어있는 당신의 저 손, 오래 기억할 게

  훗날 당신과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게 되더라도

  약속해, 잊지 않을 게, 나를 붙들어준 당신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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しろ

2010.03.26 01:17 from paRamnésie

 

 

 

  그것은 나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아니 사실은

  마지막 이름,

 

  이었습니다, 해가 지는 이 즈음이면 언제나 슬펐던 마음의

  실오라기를 기어이 찾아내어 주욱.. 당기면

  그 장난스러운 절망의 니트는

  올이 다 풀려 형태를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고운빛깔의 실뭉치를 굴리며

  고양이처럼 몹시 골똘히 투욱하며 떨어지는 그 순간을

  겨누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러나 투욱 떨어지는 그 순간,

  은 고양이에게 한낱 장난의 오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신이 시로야

 

  하고 불렀을 때 그것은 장난도 무엇도 아니라

  아주 예쁘게 짜여진 스웨터의 팔꿈치처럼

  그 팔꿈치의 다정히 늘어난 라인처럼

  제법 구체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시 시로야

 

  두번 불렀을 때 그것은 소리도 무엇도 아니라

  이미 그곳에 아주 낮고 낮게 깃들어있던 검은 목소리의 한기였을 지도 모르지요,

  당신이 그 누군가를 기어이 목졸라 죽일 때에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며, 이 즈음이면 언제나 슬픈 생각이 들어요,

  화석처럼 굳어버린 입술을 벌리고 흘러나왔다 사라져버리는

  회색빛의 때를 잔뜩 묻힌, 시로, 한때는 눈부시게 희었던 죽은 고양이의 환영

  일 지도 모르지요, 그것은 나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아니 사실은,

 

 

 

 

 

 

                     어른아이 - Sad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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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사랑이 나는

2010.03.19 20:12 from pour Moi

 

 

 

 

호란 - 불안한 사랑

 

 

 

 

 

망부석 같은 여자의 노래를

참 싫어하는데, 씨티홀을 볼 때도 이 노래가 참 싫었는데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나서 듣고 있을까

 

만취했던 사람처럼

필름이 뭉떵뭉떵 잘려나가 있는데

너의 그 말만 떠올랐어, 너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구나, 라고

 

그래서, 좋아, 싫어?

좋아, 라는 너의 목소리가 우주 몇광년 밖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그렇게 아득했어

 

그래도 이사랑이 나는 조오아요.

정말로 참아주기 힘든 가사인데 말이야

이건 분명 연애편지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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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지라니, 당치도 않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엄청난 양의 원고를 써대고 출력하고 폐기해왔다.

사실 소모적인 작업이며, 일이 끝나면 원고는 버리는 게 상책이건만

바로바로 버리질 못하고 꼭 엄청나게 퇴적된 후에야

어쩔 수 없이 내 생존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사를 감행한다.

그러니 늘 엄청난 양이다. 세상에나, 종이가 아깝다.

이 시답잖은 토너 자국을 위해 늘 소모해온 삶이기에

종이 아까운 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내게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원고에 사용한 종이에 있어서, 이면지란 없다.


뒷면은 깨끗했다. 분명 다시 쓸 수 있다.

하지만 찢는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세로로 찢은 후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깍두기 썰듯이 조각조각 찢는다.

양이 양이니만큼 찢는 손도 아프다. 가장자리에 손을 베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상상한다.

누군가 출력한 서류를 읽다가 우연히 그 뒷면의 글자들을 발견한 후,

뭐에 홀린 듯 이면지 상자를 뒤져가며 그것을 구독하고 있는 상황을.

끔찍하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개인적인 소설을 훔쳐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이면지를 읽고 있던 내 자신을 생각하니

그 친구와 절대로 친해질 수가 없었다.

내가 니 이면지를 읽었어, 그 이면의 이야기가 좋았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면지에서 본 이야기, 이면지에서 본 누군가의 마음,

이라니 말이다.

이것이 어떠한 상황인지, 나는 피부로 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나라는 사람이 그의 노트 한가운데 씌어져 있기를 바란 적은 없다.

행여 그럴 리도 없겠고.

하지만 그에게 소중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 그 이면에 말이다.

무심코 한번 뒤집어 보았더니, 거기에 내가 있다고 말이다.

그 이면지의 여자를 말이다.


차라리 찢어라, 쭉쭉 찢어버리고

거기에 다른 무엇도 다시 출력하지 말아라. 라고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면지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을 찢어버리지 못한 것은 나였다.

그는 나를 찢었을까. 아니면 아주 그럴듯한 문서의 뒷면으로 재활용해 주었을까.

지금도 이면지 상자 속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이글을 쓰고 출력한 뒤에 한번 읽을 것이다. 그리고 이면지 통 앞에 서서 보란 듯이

뒷면이 아직 깨끗한 이 종이를 쭉쭉 찢을 것이다.

완전한 소멸을 집행하는 손동작에는 망설임도 흐트러짐도 없다.

그것은 심지어, 경쾌하다.


이면지라니, 당치도 않다.

 

 

 

 

 

 

 

조원선 - 아무도,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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