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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너무 봄 같아서

2010. 4. 21. 21:17 from luMière




01234567

 

 

 

 

 

 

 

  햇빛이 너무 쨍하여, 그랬나

  라고 생각했지, 아마도 그것만은 아니었을 거야

  봄이 정말 봄 같아서,

 

  春來不似春 쓰디쓴 그 말을 수첩에 적어넣던 어김없는 봄들이

  창밖의 풍경처럼 빠르게 스쳐갈 때, 난 그만

  엉엉 울 것 같았지, 새삼스럽게도

 

  봄이 너무 봄 같아서.

 

 

 

 

 

 

 

 

 

 

 

       

미스티블루 - Spring f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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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흰돌고래 2010.04.21 21:30

    목련 피어있는 모습이 참 좋아요 *
    하얗게 몽글몽글..
    봄이 너무 봄 같다는 말, 왜이렇게 좋죠?
    애틋한 느낌이에요.

    아 노래도 좋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9 16:22

      몽글몽글.. 이란 말이 저는 좋네요 ㅎ

      미스티블루 노래, 좋죠?
      오래 전부터 너무너무 좋아하는 밴드인데
      어째서 더 유명해지지 않는지, 신기할 정도.
      막 홍보해주고 싶은 기분이에요. 히히.

    • addr | edit/del 흰돌고래 2010.04.29 23:03

      헤헤^^

      저는 미스티 블루 노래 '마음을 기울이면' 이곡 하나 알고 있었는데. 이 노래도 참 좋아요 :)

  2. addr | edit/del | reply 클리티에 2010.04.21 22:46

    춘래 불사춘..
    하늘도 아시는게지요. 여기저기 터지는 사고로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았어요.

    봄이 너무 봄 같아서. 라고 표현하신 슈풍크님의 마음이 제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이 봄은 여전히 누군가를 떠나 보내기에는 눈부십니다.
    손부채를 만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이러니하게 아름다운 세상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는듯 사람들을 돌려보내는것 같아요.

    각기 다른 그들만의 이유와 그들만의 시간과 이야기가 이제 더는 논하지 말자는 듯 아무말도 없이..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9 16:24

      봄이 너무 봄 같은데,
      슬픈일들이 팡팡 피어나는 4월이었네요.
      클리티에님.. 잘 계신지..

      이제 더는 논하지 말자는 듯 아무말도 없이..
      라는 말씀이 참 먹먹합니다.
      더는 논하려해도 그럴 수 없는 일도 있고요..
      계절은 그와 무관하게 깊어지고요.

  3.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4.22 15:53

    자칫하다 봄은 그만 사라지고 여름이 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뭔지 모르게 엄동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9 16:26

      꽃피어 있던 벚나무가 언제 그랬냐는듯
      푸른 잎사귀로 뒤덮였습니다.
      시간이 계절이 살짝 두려워집니다.
      그만 여름이 올 것 같습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TreeBatman 2010.04.23 23:02

    예뻐요!!

  5. addr | edit/del | reply 녀름 2010.04.25 00:11

    넘 멋진 목련이네요. 이제 올해는 더 이상 목련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쉽네요. 그래서 또 계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그러나봐요.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9 16:28

      네 이제 정말 다시 찍을 수 없는
      2010년의 목련이 되었네요.
      그래서 더 예뻐 보이나요.

      녀름님, 녀름은 왜 여름이 아니고 녀름일까요. 헤헤
      궁금해서요.. :)

  6. addr | edit/del | reply 위소보루 2010.04.27 11:18

    네번째랑 다섯번쨰의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 ^^

    주말에 제가 목련을 찍으러 나갔을 땐 성한 녀석들이 얼마 없더군요 ㅎ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9 16:29

      감사합니다 :)

      네, 이제 다 지고 말았네요.
      그래도 올해는 큰비가 없어서
      목련지는 모습이 그나마 덜 처참했던 것 같아요.

  7. addr | edit/del | reply nihili 2010.04.27 23:59

    여기 사진하나중 마음에 드는데 카피가 안되네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9 16:33

      에구.. 너무 활짝 열려있는 곳이라
      이미지 복사는 할 수 없게 해두었는데
      이곳에 오셔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8. addr | edit/del | reply anagu 2010.04.28 06:07

    사진도 음악도 둘다 너무 좋습니다.^^
    유독 색이 튀는 두번째 사진이 맘에 드는군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9 16:34

      아, 두번째요..
      저두 그 사진이 좋은데요.
      같은 마음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9. addr | edit/del | reply 2010.05.01 20:13

    비밀댓글입니다

  10. addr | edit/del | reply 마사루이, 2011.01.01 18:44 신고

    슈풍크님 이리로 오셨네요? ^_^
    저도 옮겼답니다! 반갑습니다!!

사진이 좋군요

2010. 4. 14. 14:56 from morceAu
 

01 사진이 좋군요,


그러자 그가 짧게 답했다.

후보정일 뿐입니다.


아, 하고 나는 다른 무엇을 떠올렸는데

그건 누군가를 찍은 몇 장의 사진이었고

아주 그럴 듯한 후보정을 거쳐

내 생애 최고의 풍경으로 남아버린 어떤 장면에 관한

인공적인 모놀로그였다.


이것이 당신의 사랑이군요,

그러자 내가 짧게 답했다.

후보정일 뿐입니다.



02 나는 낯선 이들을 웃기고 난 뒤 안도하는 사람.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은 수난자들의 질문입니다'라는 알료사의 말에

밑줄 긋는 사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첫사랑. 나는 내가 읽지 않은 필독도서,

나는 나의 죄인 적 없으나 벌이 된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창 앞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 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김애란  ‡  영원한 화자 中


 

03 죽는 순간 아주 살짝,

 


키가 준다고 생각하는 부족이 있다

안녕히! 나는 찢어진 당신 그림자에 인사한다

심장에 흰 제비꽃 무덤이 돋은 나를

내 그림자는 알고 있고

풀 무덤의 무게만큼 가벼워진 그림자를 나는 사랑한다

그러니 안녕히! 당신 그림자의 키를 잰 최초의 여름이

풀꽃처럼 웃으며 지나가는 저녁이다

찢어진 그림자가 사뿐히 공중에 떠오른다

가벼워진 당신 그림자에 드리는 첫 입맞춤,

걱정 말아요 아주 살짝, 키가 주는 것일 뿐

당신은 잘 싸웠어요

잘 사랑했어요

쉼표처럼.

살짝 키가 주는 것

쉼표처럼.

살짝 쉬는 것

 

김선우  ‡  그림자의 키를 재다 中

 

 

04 당신이 내 영혼을 빨대로 빨고 있어요.


안나 아흐마토바  ‡  당신이 내 영혼을 中

Anna Andreyevna Akhmatova. 1889-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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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4.14 15:41

    01번 후보정이 필요없는 사진과 사랑을 위하여...
    02, 03번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시인의 목소리에 한표
    04번! 나의 영혼을 빨대로 빨아준 당신이 있었거나, 있거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이 비극에 저주를...

    • addr | edit/del 서정적자아 2010.04.14 21:36

      여인님의 답글에 나는 한표.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0 19:58

      여인님의 답글에 저도 한표 추가요~ ㅋㅋ
      네네. 후보정이 필요없는, 소용없는, 그런 사진이요.
      그래서 필름이 좋아요!
      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두 분의 댓글이
      얼마나 기다려지고 반가운지 모르실 거예요. 헤헤.
      감사해요 :)

  2. addr | edit/del | reply 봄눈별 2010.04.15 02:01

    글을 세 번,
    다시 읽어내려간
    지금 저의 기분은
    미로에 갇힌 구름이 된 것 같아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0 19:59

      여러 번 읽어주셔서 영광이에요 :)
      떠다니는 구름이
      미로속에 갇히다니요.. 아, 뭔가 멋진데요?!

  3. addr | edit/del | reply 흰돌고래 2010.04.15 18:48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 뒷걸음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0 20:15

      앗, 돌고래님! 저도 그 부분이 제일 좋았어요.
      때로는 뒷걸음치더라도
      마지막까지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이해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저는 좋아요 :)

  4. addr | edit/del | reply 위소보루 2010.04.18 19:15

    영혼을 빨대로 빨다라는 문장에서 왠지 젤리포 같은 것을 빨대로 빨았을 때 뭉텅뭉텅 기분 좋게 들어오는 입의 감각을 떠올렸습니다. ㅋ

    후보정일 뿐이라는 진심과 거짓말의 사이.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0 20:14

      아, 말캉말캉 젤리포! +_+
      어렸을 때 엄청 좋아했었는데
      그 감각이 떠오르네요. 히히.

      아마도 진심이었으면 하는 거짓말, 이었을 거예요.

  5. addr | edit/del | reply 2010.04.19 21:03

    비밀댓글입니다

lovesong

2010. 4. 10. 21:31 from songErie

 

 

 

 

 

오지은 - 당신이 필요해요

 

 

 

I need love 愛されたい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는 필요없어 오직 너에게만

내가 필요로 할 땐 그게 한밤중이라 해도

특히 오늘같은 새벽엔 어서 날아 여기로 다가와 내 머릿속

저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를 쫓아줘

그 큰 손으로 내 볼을 감싸줘 콧잔등 주름에 입 맞춰줘

뒤에서 감싸 안아줘 바보 같은 농담도 해줘 끊임없이 날 괴롭혀줘

 

I need love 話したいの

둘만의 이야기를 내 머릿속부터 발끝까지 모든걸 알아줬으면

사랑한다는 말은 그게 한 순간이라 해도

당신의 눈과 마음과 몸까지 전부 나에게 주세요 날 두고서

혼자서 저 세상으로 돌아가면 안돼

한심하다는 말 듣는다 해도

이 세상 사람 그 누구보다 행복할 수는 있잖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나와 꿈속에 있어줘

 

내가 다른 생각 못하게 그런 무서운 생각 안하게

마음 속으로 울지 않게 그 커다란 두 손으로 날 데려가 여기서 꺼내줘

제발.

 

 

 

 

 

 

 

 

 

 

 

 

 

 

 

 

 

 

 

 

 

나 이승기 안 좋아하는데

나랑 결혼해줄래, 같은 노래에 가슴 뛴 건 모조리 당신 때문이야,

생각만해도 낯부끄런 아이유의 있잖아, 같은 노래를 불러버린 것도 당신 때문이야,

 

하지만 정말로 당신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건 이런 노래.

상큼발랄과는 거리가 먼 노래.

사랑한다는 말은 커녕, 새나 쫓아달라는 이상한 여자의 노래.

주말 야근을 마치고 저녁도 못 먹은 당신이

배고프다고 배고프다고, 두 시간 거리를 과속으로 달려오는 동안

내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듣고 있는 노래.

당신을 기다리는 게 즐겁고 기쁘고

그런데도 마음이저려서 아마도 당신 앞에선 영영 부르지 못할 노래.

백화점 꼭대기 게임센터 오백원 짜리 노래방에서

혼자서 부르고 말 노래. 아 그러나 숨길 수 없이,

 

당신을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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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4.10 22:56

    처음에는 나를 위한 노래인 것 같더니, 정말로 당신의 노래인 듯도 합니다.

    두시간 거리를 과속을 달려오는 그 남자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노래를 듣고 있는 그 여자가, 만나는 그 순간이 갑자기 그립습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13 15:56

      아, 그렇네요. 그를 위한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저를 위한 노래이기도 해요.

      그 순간, 지나온 순간, 지나갈 순간...
      모든 순간들이, 갑자기 그립습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nihili 2010.04.13 03:15

    아~ 노래 가사와 글이 순간 저린데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13 15:58

      저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제 기분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위소보루 2010.04.18 19:17

    오지은 1집의 첫 곡이죠. 이 앨범을 처음 들으면 들리는 이 노래를 듣고는 오지은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그런 ^^ 처음 세 트랙이 이런 분위기의 노래였는데 일부러 그렇게 배치했다고 하더라구요. 자신의 노래는 이러니까 듣고 싶으면 계속 듣고 아니면 떨어져 나가라는 의도로 ㅋ

    물론 전 무척 좋아합니다만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20 20:22

      듣고 싶음 계속 듣고 아니면 지금당장 떨어져라?!
      아, 오지은이라는 뮤지션, 너무 당당하고 멋진데요 @_@
      사실은 저도 처음 들었을 때 그녀의 창법이 좀 싫었어요.
      뭐랄까 처량한 타령조의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히히
      그런데 떨어져나가지 않았던 이유는 순전히
      가사 때문이에요. 그녀의 노랫말들이 너무 좋아요.
      문학을 해도 좋겠다 싶을 만큼요 :)

Somnambulist

2010. 4. 7. 12:20 from songErie

 

 

 

 

 

 

 

 

 

 

 

 

 

 

 

 

 

 

 

 

 

 

Ralph Gibson  <The Somnambulist>  1970.

 

 

 

 

 

내가 꿈속에서 한사코 허공을 끌어안으며

당신, 이름을 불렀다면

그것은 영원히

 

영원히 내가

당신,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꿈속에 있지 않고

나는 몽유병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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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서정적자아 2010.04.07 14:02

    마지막 두줄. 오랫동안 들여다 보았습니다. 겨우 한 문장이.. 많은 말을 하네요.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군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8 00:23

      더 꿈꾸지 않겠다는 것은
      이꿈속에 갇히겠다는 것일까요, 현실로 나가겠다는 것일까요.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된 채로 충동적으로 써버린 두 줄을,
      정확히 찝으셨어요. 그래서 부끄럽네요, 뜨끔하고요 :)

    • addr | edit/del 흰돌고래 2010.04.08 00:42

      저는 그 두줄,
      꿈이 현실이 된 느낌이에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8 01:59

      의도는 그랬던 거 같은데 말이죠.
      쓰고나서 보니 아주 복잡해지고 말았어요 ㅠㅠ

  2. addr | edit/del | reply 흰돌고래 2010.04.08 00:44

    저는 그 위에 두 줄도 참 좋아요 ... ♥

    영원히 내가
    당신,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슈풍크님의 문장은 단정해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8 01:57

      고마워요, 흰돌고래님 :)

      저는 있죠, 단정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늘 무엇이든 헝크러트리고 말아요.
      단정한 글을 쓰고 싶어요, 언젠가는.

  3. addr | edit/del | reply 봄눈별 2010.04.08 22:48

    주장일까요, 진실일까요.
    복잡해졌습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10 20:50

      주장일까요, 진실일까요.
      아, 그래서 제가 복잡해졌군요.
      놀랐어요, 저보다도 정확하셔서요.

0
 

 

 

 

 

 

 

 

 

 

 

 

 

 

 

 

 

 

 

 

 

 

 

 

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 뒤에서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하지만 돌도 더위도 추위도

또한 당신도 막을 수는 없지

내 맘대로 내 속에서

마치 계절이 오가며

땅 위에 숲을 만들듯

내가 당신을 부쉈다 다시 맞추는 것을


Jules Supervielle. (1884-1960)

 

 

 


H. 나는 당신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함축한 이니셜이 되었을까.

생략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의 내 마음에는.

다시는 부연 설명될 수 없는 것들, 세세히 풀어낼수록 초라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다시는 당신을 쓰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한다. 어쩌면 그 약속을 깨기 위해

나는 이 자발적인 유배를 택했을 것이다. 때로 추억에서 힘을 얻는다. 그런 뒤에는

절망도 역시 얻는다. 부쉈다 다시, 부쉈다 다시, 그렇게 얼기설기 맞춰진 당신의 조각들은

흉물스러워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손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결국 안고갈 수밖에는 없음을 안다.

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구조의 방을 생각한다.

아무리 반복해서 그려보아도, 두 개의 창이 달린 바닥이 없는 삼각뿔. 이다.

존재하지만 사람이 머물 수 없는 방. 꿈속에서 푹.. 하고 두발이 허공으로 꺼질 때,

나는 겨우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내가 아직도 바닥없는 그 방에 있다면 그것은 분명

꿈일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웃고 또 내가 운다면, 그것 역시

내손이 부쉈다 다시 맞춘 웃음이고 울음일 것이다. 세 개의 벽과 두개의 문 뒤에서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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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서정적자아 2010.04.05 11:38

    글이 참 좋네요..
    ...쓸쓸합니다.. 제 마음이 말이예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6 16:27

      쓴지 좀 된 글인데, 저역시두 쓸쓸했었습니다.
      각자의 마음이지만, 가끔은 비슷하게 쓸쓸하기도 하여서
      위안이 되나봐요. 고맙습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봄눈별 2010.04.06 01:29

    아...맥주라도 마실까...봐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6 16:29

      아...맥주라도 마실까 싶은 새벽 1시 29분의 기분을요,
      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맥주를 잘 마시지 못하는데도요.ㅋ

  3.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4.06 13:53

    그러게 말이예요. 우리가 아는 사람들은 다 내가 부쉈다 맞춘 그런 사람들일 뿐인데...

    그런데 일말의 가능성은 세개의 벽 뒤과 두 개의 문 뒤의 그 사람도 열심히 슈풍크님을 부쉈다 맞췄다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6 16:32

      정말 그런 걸까요. 우리 모두는
      벽과 문을 사이에 두고 앉아 각자의 레고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건가요. 그게 참 이상스럽게도 단란하고 귀엽고
      그리고 덧없습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파천 2010.06.09 01:00 신고

    아름다움에 대한 진지함,,,혹은 그런것에서 부터의 외면,,덧없음에 대한 한가닥,,,미련,,그런 것,,,

두 개의 진실

2010. 3. 30. 22:18 from luMiè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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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들이 날고 있었는지,

  그들이 하늘을 걷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겠어?

 

  틀림없이 하나만 옳고 하나는 틀렸다는 말은,

  그때의 내가 원한 것이 아니란 것을

  너는 몰랐고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테지,

  하지만 모를 거라는 사실이 슬프다기 보다

  몰라도 상관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랬다, 그 사라진 절터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말야.. 라고 설명할 니가 없다는 사실이

  어쩜 놀랍지도 않을까, 물속의 잉어들이 사람을 두려워 않듯이 말야

  이제 우린 서로 다른 세계에 있고, 그래서

  두 개의 기억이, 두 개의 상처가

  모두 다 진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고마웠다고,

  나는 수면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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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서정적자아 2010.03.30 22:26

    사진은 언제나 좋고.
    글도 좋네요.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1 11:30

      넓고 따스한 마음으로
      보아주시니까요..
      기쁘고 감사하고 그래요. :)

  2.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3.31 14:23

    물에 비친 풍경이 늘 슬픈 것은 풍경이 눈물을 닮아서인지 거꾸로 라서인지 잘모르겠습니다.

    저기 두사람은 이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네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1 11:32

      현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니까요.
      반영사진을 보면 늘 슬픈 꿈을 꾼 것같은 기분이 듭니다.

      물속의 세계와 물밖의 세계만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네, 저 두사람도, 그렇네요.

  3. addr | edit/del | reply 꼬뮌 2010.04.01 00:48

    낡아빠진 노래가 생각나네요.
    나는 아직 두 진실이 때때로 충돌합니다.
    외부의 언어로 말하고 싶네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1 11:35

      그것은 어떤 노래였을까요..
      이렇게 많은 층위의 진실들이 존재하는데
      진실인 것과 진실 아닌 것을 구분하려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나를, 생각합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TreeBatman 2010.04.01 23:24

    진실과 거짓의 분별은 무의미한 것
    오직 진리 만이 유일할 뿐 ^^
    예쁘네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2 22:59

      하나가 옳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 외의 것은 모두가 그른 것이 돼버리는 상황이
      참 슬픕니다. 그럼에도
      이 사진을 예쁘게 보아주셔서 기쁘네요.
      방문 감사해요 :)

    • addr | edit/del TreeBatman 2010.04.02 23:47

      선불교 공부하시나요~?
      한방 맞았군요.ㅎㅎ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4 14:05

      공부는 해본적 없습니다만,
      제 사상이 그쪽에 가깝나요? :)

  5. addr | edit/del | reply 위소보루 2010.04.04 18:33

    그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라는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글을 쓰다가 생각해보니 그건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한면에 같이 존재하는 것이 더 맞겠단 생각이 드네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8 02:02

      댓글을 읽으며
      한면만을 가진 동전이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는 없겠지만요..
      이걸 쓸 때의 제 마음을 이해해주신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위소보루님 :)

손을, 찍다

2010. 3. 30. 19:32 from paRamné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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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찍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된 습관이야

 

  우연히 펼친 어느 잡지에서 방송작가 송지나의 손을 봤을 때,

  인터뷰를 하면서도 얼굴을 보이기가 부끄럽다고

  겨우 실려있던 단 한 장의 사진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그냥 그의 손이었어, 그런데 그 빈 손에서

  그 사람 전체가 보인다는 느낌, 처음이었어

  그 이후로도 나는 송지나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알려는 마음도 들지 않았어, 그손이 말해준 것으로

  내게는 충분했으니까, 말이야

 

  이 편협한 습관이, 올봄 이렇게 당신 손을 찍게했구나

  뽀얗지도 않고 길이도 짧다고 늘 당신으로부터 구박만 받는 당신 손이,

  내 손등의 오래된 흉터를 안타까운 듯 덮어주던 당신 손이,

  나는 너무 좋아, 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워, 당신 손을 잡는 대신

  말없이 당신 손을 찍는다, 도대체 뭘 그리 찍어대는 거야? 라고 당신이 물어도

  마냥 웃으며 셔터를 누를 뿐이었는데,

  그 순간 내 손등의 흉터가 살아나기라도 한듯 징.. 하는 쓰라림을 느꼈어

  그건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한다해도 이해할 사람이 없겠지

  그러니 당신에게도 그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을 게, 그냥

 

  당신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 그것으로 내가 더불어 웃게 되는 것,

  거기까지만 말해도, 당신은 알 테니까

  당신 손이 당신 전체를 말하 듯이.. 이 글이 내마음 전체를 말해줄 테니까..

  점자를 읽듯 우리가 서로에게 읽어낸 어떤 말들을

  흉터를 가진 손등이, 땀이 밴 손바닥이, 손끝의 지문이

  나보더 더 오래 기억해줄 거라 생각하니, 아 이토록 나는 기뻐

  긴장이 배어있는 당신의 저 손, 오래 기억할 게

  훗날 당신과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게 되더라도

  약속해, 잊지 않을 게, 나를 붙들어준 당신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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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3.30 19:50

    참으로 진지해보이는 손입니다.

    면접을 보는 것 같은 자세의 손, 아니면 상대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헛몸짓을 제어하려는 듯 몸에 자물쇠를 건듯한 손입니다.

    • addr | edit/del 서정적자아 2010.03.30 22:28

      여인님. 답글이 아름답습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1 11:43

      아, 정말루요. 믿고싶어지는 댓글입니다.

      때로는 그 진지함이 당황스러울 만큼요,
      숨막히게 진지하지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요.
      오직 듣기 위해 자기를 제어하고 앉아있는 사람,
      정말로 그렇다면, 아 멋진데요 :)

  2. addr | edit/del | reply 서정적자아 2010.03.30 22:28

    단정하고. 기름끼없이 건조한 남자. 근데 잘 웃는 남자일 것 같네요.
    손가락이 반지.. 임자가 있군요. 하하.
    이분 목소리 좋은가요? 아마도 목소리가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4.01 11:49

      혹시 그를 아세요? :)

      단정하고. 느끼한 말 같은 거 못하고.
      그런데 저보다 잘 웃고요.
      목소리도 나름 괜찮은.. 히히.

  3. addr | edit/del | reply 녀름 2010.04.25 00:13

    참 단정하네요. ^^

しろ

2010. 3. 26. 01:17 from paRamnésie

0

 

 

 

  그것은 나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아니 사실은

  마지막 이름,

 

  이었습니다, 해가 지는 이 즈음이면 언제나 슬펐던 마음의

  실오라기를 기어이 찾아내어 주욱.. 당기면

  그 장난스러운 절망의 니트는

  올이 다 풀려 형태를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고운빛깔의 실뭉치를 굴리며

  고양이처럼 몹시 골똘히 투욱하며 떨어지는 그 순간을

  겨누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러나 투욱 떨어지는 그 순간,

  은 고양이에게 한낱 장난의 오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신이 시로야

 

  하고 불렀을 때 그것은 장난도 무엇도 아니라

  아주 예쁘게 짜여진 스웨터의 팔꿈치처럼

  그 팔꿈치의 다정히 늘어난 라인처럼

  제법 구체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시 시로야

 

  두번 불렀을 때 그것은 소리도 무엇도 아니라

  이미 그곳에 아주 낮고 낮게 깃들어있던 검은 목소리의 한기였을 지도 모르지요,

  당신이 그 누군가를 기어이 목졸라 죽일 때에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며, 이 즈음이면 언제나 슬픈 생각이 들어요,

  화석처럼 굳어버린 입술을 벌리고 흘러나왔다 사라져버리는

  회색빛의 때를 잔뜩 묻힌, 시로, 한때는 눈부시게 희었던 죽은 고양이의 환영

  일 지도 모르지요, 그것은 나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아니 사실은,

 

 

 

 

 

 

                     어른아이 - Sad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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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엘군 2010.03.26 01:55

    짙은, 아주 짙은 보라색을 보고 싶네요.
    슈풍크 님의 글은 그래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29 10:33

      그런 빛깔을 좋아합니다. 제글이 그런 빛깔을 닮았다면
      저에게는 기쁨이예요! 고맙습니다 :)
      엘군님 블로그에 가끔 들르는데,
      제 컴터가 버전이 낮은지 제대로 보이질 않더군요.
      뭐가 문제인지.. 슬퍼요 ㅠㅠ

  2. addr | edit/del | reply 봄눈별 2010.03.26 15:04

    이미 그곳에 아주 낮고 낮게 깃들어 있던 검은 목소리의 한기,
    라는 부분에서 멈춰 버리고 말았어요. 한참 동안이나,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떠올랐어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29 10:36

      아, 그리운 사람들이요..
      그리움은 분명 뜨거운 마음일 것인데,
      왜 떠오르는 그들 목소리의 이미지는
      그토록 검은 한기로 가득했을까요..

그래도 이사랑이 나는

2010. 3. 19. 20:12 from pour Moi

 

 

 

 

호란 - 불안한 사랑

 

 

 

 

 

망부석 같은 여자의 노래를

참 싫어하는데, 씨티홀을 볼 때도 이 노래가 참 싫었는데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나서 듣고 있을까

 

만취했던 사람처럼

필름이 뭉떵뭉떵 잘려나가 있는데

너의 그 말만 떠올랐어, 너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구나, 라고

 

그래서, 좋아, 싫어?

좋아, 라는 너의 목소리가 우주 몇광년 밖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그렇게 아득했어

 

그래도 이사랑이 나는 조오아요.

정말로 참아주기 힘든 가사인데 말이야

이건 분명 연애편지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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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서정적자아 2010.03.19 20:56

    음악 잘 듣고 갑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22 13:47

      불쑥 생각나기에 올려본 노래인데,
      자아님이 같이 들어주셔서
      기쁘고 가슴이 왠지 징.. 하고 그래요.

  2. addr | edit/del | reply 흘립 2010.03.20 03:44

    뭔 노래가 이렇게 청승 맞아, 라고 말 하면서 듣는 노래. 아직도 이 노래를 좋아 하는지 싫어 하는지 입장을 정하지도 못하고 듣고 있네요. 가끔. 아주 가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22 13:48

      맞아요 참 청승맞은 노래예요.
      싫다가 좋고 좋다가 싫고 막 변덕도 나고요.
      그러면서도 듣고 있네요. 저도.

  3. addr | edit/del | reply 느림보 2010.03.20 11:15

    슈풍크님께서 음악을 올려주시면 꼭 듣게 됩니다. 어머나. 나 슈풍크님의 선곡안을 믿게 되었나봐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22 13:49

      어머나. 느림보님.
      그건 너무 영광인 걸요! ^___^

  4. addr | edit/del | reply 2010.03.21 20:25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22 14:02

      얼마만이든, 이렇게 와주셔서 기뻐요 :)

      off.. 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ㅇff.. 하셔도 괜찮아요.
      언젠가는 on.. 하실 거니까
      저는 기다리는 것, 징징대면서도 꽤 잘하니까요.
      다만 괴로운 시간이 아니셨길 바라고요.

      어제는 멋부린다고 목도리 말고 스카프를 하고
      나갔는데, 이즈음의 찬바람이
      저는 왜이리 춥고도 좋은지요.
      정말 곧 봄이겠지요..

      이어폰 같이 끼고 걷는 기분으로
      음악들 함께 들어주셔서 기뻐요.
      호란의 목소리 저두 좋아해요.
      맞아요, 노래를 잘 한다기보다는
      음색자체가 좋은 사람요..
      마음에도 음색이 있다면
      드러나보여지는 것 이전에
      그자체가 깊은 사람요 :)

  5. addr | edit/del | reply 이정일 2010.03.25 09:22

    좋은 노래 듣고 갑니다.
    조금씩 끊어지는 건 제 컴퓨터나 인터넷 문제겠지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26 01:16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컴퓨터도 가끔 골골골 합니다 :)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2010. 3. 16. 13:17 from paRamnésie
 

이면지라니, 당치도 않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엄청난 양의 원고를 써대고 출력하고 폐기해왔다.

사실 소모적인 작업이며, 일이 끝나면 원고는 버리는 게 상책이건만

바로바로 버리질 못하고 꼭 엄청나게 퇴적된 후에야

어쩔 수 없이 내 생존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사를 감행한다.

그러니 늘 엄청난 양이다. 세상에나, 종이가 아깝다.

이 시답잖은 토너 자국을 위해 늘 소모해온 삶이기에

종이 아까운 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내게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원고에 사용한 종이에 있어서, 이면지란 없다.


뒷면은 깨끗했다. 분명 다시 쓸 수 있다.

하지만 찢는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세로로 찢은 후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깍두기 썰듯이 조각조각 찢는다.

양이 양이니만큼 찢는 손도 아프다. 가장자리에 손을 베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상상한다.

누군가 출력한 서류를 읽다가 우연히 그 뒷면의 글자들을 발견한 후,

뭐에 홀린 듯 이면지 상자를 뒤져가며 그것을 구독하고 있는 상황을.

끔찍하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개인적인 소설을 훔쳐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이면지를 읽고 있던 내 자신을 생각하니

그 친구와 절대로 친해질 수가 없었다.

내가 니 이면지를 읽었어, 그 이면의 이야기가 좋았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면지에서 본 이야기, 이면지에서 본 누군가의 마음,

이라니 말이다.

이것이 어떠한 상황인지, 나는 피부로 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나라는 사람이 그의 노트 한가운데 씌어져 있기를 바란 적은 없다.

행여 그럴 리도 없겠고.

하지만 그에게 소중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 그 이면에 말이다.

무심코 한번 뒤집어 보았더니, 거기에 내가 있다고 말이다.

그 이면지의 여자를 말이다.


차라리 찢어라, 쭉쭉 찢어버리고

거기에 다른 무엇도 다시 출력하지 말아라. 라고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면지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을 찢어버리지 못한 것은 나였다.

그는 나를 찢었을까. 아니면 아주 그럴듯한 문서의 뒷면으로 재활용해 주었을까.

지금도 이면지 상자 속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이글을 쓰고 출력한 뒤에 한번 읽을 것이다. 그리고 이면지 통 앞에 서서 보란 듯이

뒷면이 아직 깨끗한 이 종이를 쭉쭉 찢을 것이다.

완전한 소멸을 집행하는 손동작에는 망설임도 흐트러짐도 없다.

그것은 심지어, 경쾌하다.


이면지라니, 당치도 않다.

 

 

 

 

 

 

 

조원선 - 아무도,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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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3.16 13:28

    이면지를 찢는 슈풍크님의 손은 길고 차가운 흰빛일듯...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19 12:17

      찢는다는 행동은, 그런 손에게 참 잘어울리네요.
      그런데 참 어울리지 않게 제손은 늘 뜨겁고
      길다란 손가락은 이상해보일 지경이고요..

  2. addr | edit/del | reply 서정적자아 2010.03.17 21:34

    이면지의 여자. 시로 한번 써보세요. 읽고싶네요.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19 12:20

      비슷한 제목의 것을 쓴적이 있어요.
      아주 짧고 조악한 것이었어요.
      자아님께는 정말 멋지게 써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꼭 그러고 싶어요 :)

  3. addr | edit/del | reply 꼬뮌 2010.03.18 09:37

    좋아하는 시를 인쇄하고,
    그리고 버린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시를 왜 버리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저는 그것들을 버리면서,
    누군가가 시를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시가 단지 좋아하는 시가 아니라,
    제가 쓴 시라면, 그리 하지 못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19 12:27

      '누군가가 쓴 것'과 '내가 쓴 것'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겠지요.
      완벽히 같은 단어나 문장을 쓴다고 해도요.
      두개는 완벽히 같아질 수가 없어요.
      남의 것은 함부로 찢을 수 없겠지만
      제것이니 찢을 수도 있고요.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게 없애버릴 수 있지만
      그러나 자기 마음에선 없어지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