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mnésie'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0.04.04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7)
  2. 2010.03.30 손을, 찍다 (6)
  3. 2010.03.26 しろ (4)
  4. 2010.03.16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5. 2010.02.26 천박해질 권리 (5)
  6. 2010.02.20 꿈에서 온 트랙백 (16)
  7. 2010.02.16 20050902 날씨맑음 (10)
  8. 2010.02.03 여행하는 남자 (4)
  9. 2010.01.20 살겠다,
  10. 2010.01.17 망각의 첫 순서 (14)
 

 

 

 

 

 

 

 

 

 

 

 

 

 

 

 

 

 

 

 

 

 

 

 

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 뒤에서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하지만 돌도 더위도 추위도

또한 당신도 막을 수는 없지

내 맘대로 내 속에서

마치 계절이 오가며

땅 위에 숲을 만들듯

내가 당신을 부쉈다 다시 맞추는 것을


Jules Supervielle. (1884-1960)

 

 

 


H. 나는 당신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함축한 이니셜이 되었을까.

생략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의 내 마음에는.

다시는 부연 설명될 수 없는 것들, 세세히 풀어낼수록 초라해지는 그런 것들, 말이다.

다시는 당신을 쓰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한다. 어쩌면 그 약속을 깨기 위해

나는 이 자발적인 유배를 택했을 것이다. 때로 추억에서 힘을 얻는다. 그런 뒤에는

절망도 역시 얻는다. 부쉈다 다시, 부쉈다 다시, 그렇게 얼기설기 맞춰진 당신의 조각들은

흉물스러워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손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결국 안고갈 수밖에는 없음을 안다.

세 개의 벽과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구조의 방을 생각한다.

아무리 반복해서 그려보아도, 두 개의 창이 달린 바닥이 없는 삼각뿔. 이다.

존재하지만 사람이 머물 수 없는 방. 꿈속에서 푹.. 하고 두발이 허공으로 꺼질 때,

나는 겨우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내가 아직도 바닥없는 그 방에 있다면 그것은 분명

꿈일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웃고 또 내가 운다면, 그것 역시

내손이 부쉈다 다시 맞춘 웃음이고 울음일 것이다. 세 개의 벽과 두개의 문 뒤에서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말이다.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7) 2010.04.04
손을, 찍다  (6) 2010.03.30
しろ  (4) 2010.03.26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2010.03.16
천박해질 권리  (5) 2010.02.26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7

손을, 찍다

2010.03.30 19:32 from paRamnésie

 

 

 

 

 

 

 

 

 

 

 

 

 

 

 

 

 

 

 

 

 

 

 

 

 

 

 

  손을 찍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된 습관이야

 

  우연히 펼친 어느 잡지에서 방송작가 송지나의 손을 봤을 때,

  인터뷰를 하면서도 얼굴을 보이기가 부끄럽다고

  겨우 실려있던 단 한 장의 사진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그냥 그의 손이었어, 그런데 그 빈 손에서

  그 사람 전체가 보인다는 느낌, 처음이었어

  그 이후로도 나는 송지나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알려는 마음도 들지 않았어, 그손이 말해준 것으로

  내게는 충분했으니까, 말이야

 

  이 편협한 습관이, 올봄 이렇게 당신 손을 찍게했구나

  뽀얗지도 않고 길이도 짧다고 늘 당신으로부터 구박만 받는 당신 손이,

  내 손등의 오래된 흉터를 안타까운 듯 덮어주던 당신 손이,

  나는 너무 좋아, 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워, 당신 손을 잡는 대신

  말없이 당신 손을 찍는다, 도대체 뭘 그리 찍어대는 거야? 라고 당신이 물어도

  마냥 웃으며 셔터를 누를 뿐이었는데,

  그 순간 내 손등의 흉터가 살아나기라도 한듯 징.. 하는 쓰라림을 느꼈어

  그건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한다해도 이해할 사람이 없겠지

  그러니 당신에게도 그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을 게, 그냥

 

  당신이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 그것으로 내가 더불어 웃게 되는 것,

  거기까지만 말해도, 당신은 알 테니까

  당신 손이 당신 전체를 말하 듯이.. 이 글이 내마음 전체를 말해줄 테니까..

  점자를 읽듯 우리가 서로에게 읽어낸 어떤 말들을

  흉터를 가진 손등이, 땀이 밴 손바닥이, 손끝의 지문이

  나보더 더 오래 기억해줄 거라 생각하니, 아 이토록 나는 기뻐

  긴장이 배어있는 당신의 저 손, 오래 기억할 게

  훗날 당신과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게 되더라도

  약속해, 잊지 않을 게, 나를 붙들어준 당신의 손.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7) 2010.04.04
손을, 찍다  (6) 2010.03.30
しろ  (4) 2010.03.26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2010.03.16
천박해질 권리  (5) 2010.02.26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6

しろ

2010.03.26 01:17 from paRamnésie

 

 

 

  그것은 나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아니 사실은

  마지막 이름,

 

  이었습니다, 해가 지는 이 즈음이면 언제나 슬펐던 마음의

  실오라기를 기어이 찾아내어 주욱.. 당기면

  그 장난스러운 절망의 니트는

  올이 다 풀려 형태를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고운빛깔의 실뭉치를 굴리며

  고양이처럼 몹시 골똘히 투욱하며 떨어지는 그 순간을

  겨누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러나 투욱 떨어지는 그 순간,

  은 고양이에게 한낱 장난의 오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신이 시로야

 

  하고 불렀을 때 그것은 장난도 무엇도 아니라

  아주 예쁘게 짜여진 스웨터의 팔꿈치처럼

  그 팔꿈치의 다정히 늘어난 라인처럼

  제법 구체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시 시로야

 

  두번 불렀을 때 그것은 소리도 무엇도 아니라

  이미 그곳에 아주 낮고 낮게 깃들어있던 검은 목소리의 한기였을 지도 모르지요,

  당신이 그 누군가를 기어이 목졸라 죽일 때에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며, 이 즈음이면 언제나 슬픈 생각이 들어요,

  화석처럼 굳어버린 입술을 벌리고 흘러나왔다 사라져버리는

  회색빛의 때를 잔뜩 묻힌, 시로, 한때는 눈부시게 희었던 죽은 고양이의 환영

  일 지도 모르지요, 그것은 나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아니 사실은,

 

 

 

 

 

 

                     어른아이 - Sad thing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내 생각을 조금도 않지만  (7) 2010.04.04
손을, 찍다  (6) 2010.03.30
しろ  (4) 2010.03.26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2010.03.16
천박해질 권리  (5) 2010.02.26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1 : 댓글 4
 

이면지라니, 당치도 않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엄청난 양의 원고를 써대고 출력하고 폐기해왔다.

사실 소모적인 작업이며, 일이 끝나면 원고는 버리는 게 상책이건만

바로바로 버리질 못하고 꼭 엄청나게 퇴적된 후에야

어쩔 수 없이 내 생존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사를 감행한다.

그러니 늘 엄청난 양이다. 세상에나, 종이가 아깝다.

이 시답잖은 토너 자국을 위해 늘 소모해온 삶이기에

종이 아까운 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도 내게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원고에 사용한 종이에 있어서, 이면지란 없다.


뒷면은 깨끗했다. 분명 다시 쓸 수 있다.

하지만 찢는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세로로 찢은 후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서 깍두기 썰듯이 조각조각 찢는다.

양이 양이니만큼 찢는 손도 아프다. 가장자리에 손을 베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상상한다.

누군가 출력한 서류를 읽다가 우연히 그 뒷면의 글자들을 발견한 후,

뭐에 홀린 듯 이면지 상자를 뒤져가며 그것을 구독하고 있는 상황을.

끔찍하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개인적인 소설을 훔쳐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이면지를 읽고 있던 내 자신을 생각하니

그 친구와 절대로 친해질 수가 없었다.

내가 니 이면지를 읽었어, 그 이면의 이야기가 좋았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면지에서 본 이야기, 이면지에서 본 누군가의 마음,

이라니 말이다.

이것이 어떠한 상황인지, 나는 피부로 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나라는 사람이 그의 노트 한가운데 씌어져 있기를 바란 적은 없다.

행여 그럴 리도 없겠고.

하지만 그에게 소중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 그 이면에 말이다.

무심코 한번 뒤집어 보았더니, 거기에 내가 있다고 말이다.

그 이면지의 여자를 말이다.


차라리 찢어라, 쭉쭉 찢어버리고

거기에 다른 무엇도 다시 출력하지 말아라. 라고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면지였을 뿐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것을 찢어버리지 못한 것은 나였다.

그는 나를 찢었을까. 아니면 아주 그럴듯한 문서의 뒷면으로 재활용해 주었을까.

지금도 이면지 상자 속에서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이글을 쓰고 출력한 뒤에 한번 읽을 것이다. 그리고 이면지 통 앞에 서서 보란 듯이

뒷면이 아직 깨끗한 이 종이를 쭉쭉 찢을 것이다.

완전한 소멸을 집행하는 손동작에는 망설임도 흐트러짐도 없다.

그것은 심지어, 경쾌하다.


이면지라니, 당치도 않다.

 

 

 

 

 

 

 

조원선 - 아무도, 아무것도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을, 찍다  (6) 2010.03.30
しろ  (4) 2010.03.26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2010.03.16
천박해질 권리  (5) 2010.02.26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20050902 날씨맑음  (10) 2010.02.16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6

천박해질 권리

2010.02.26 03:42 from paRamnésie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빼내올 수 있는지,

그 지옥의 불길을 어떻게 사그라지게 만들 수 있는지 까지 대답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나가는 것도 아직까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인 듯하다.

이 세상에 온갖 악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매번 놀라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섬뜩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잔인한 해코지를 손수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

나이가 얼마나 됐든지 간에, 무릇 사람이라면 이럴 정도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를 망각할 만큼 순수하고 천박해질 수 있을 권리가 전혀 없다.


수잔 손탁  ‡  타인의 고통 中

 

 

 



 

 

 

 

 

 

 

 

 

 

 

 

 

 

 

 

 

라디오는 어때? 라고 당신이 물었을 때

그 화창한 봄의 수목원에서요,

매일매일 빨고 또 빤 빨래를 색이 다 빠질 때까지

유한락스에 손이 삭아서 없어질 때까지 문대고 있는 기분이에요, 라고 내가 말할 때

당신 손엔 수잔 손탁의 책이 들려 있었지요. 재밌어요, 그책?

고통인데, 재밌을리가. 그래봐야 타인의 것이잖아요.

그리고는 꽤나 짜증스런 선문답이 이어졌는데, 내가 했던 말도 당신이 했던 말도

기억에 없어요. 당신은 꽃들 속에 지친 듯 앉아있었고,

나는 카메라를 들고도 사진을 안 찍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봄이 너무 휘황하여 그랬나요?

그 봄이 또 오려는지 오늘은 날이 따스했지요, 이제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이것은 다른 무엇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고통, 일 뿐이라고요.

미안하단 말 듣기 싫고, 무력하단 말은 더 듣기 싫고

그냥 읽지 않을 책의 목록이 좀 더 생겼습니다, 라고요.

말하건대 수잔 손탁은 읽지 않겠어요, 아무와도 수잔 손탁에 대해선 이야기 않겠어요.

이것이 당신에 대한 내 애정과 환멸과 고통에 대한 맹세라면 코웃음 칠 건가요?

그래도 다행인 건, 다시는 수목원에 안 가겠어요,

라는 말은 죽어도 못 하겠네요.

무엇을 잃어도 아 수목원에는 가고 싶어요, 어서 장미가 피어서,

그 화려한 것들을 차마 찍지는 못하고 보고만 싶어요,

느리게 지나는 오후 내내, 넋을 놓고. 천박하게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しろ  (4) 2010.03.26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2010.03.16
천박해질 권리  (5) 2010.02.26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20050902 날씨맑음  (10) 2010.02.16
여행하는 남자  (4) 2010.02.03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5

꿈에서 온 트랙백

2010.02.20 22:16 from paRamnésie

 

 

 

 

 

 

 

 

 

 

 

 

 

 

 

 

 

 

 

 

 

그러니까, 안녕,

 

어젯밤엔 꿈많은 얕은 잠이 왔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나는 웃었습니다

한 순간도 울고 싶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꿈에 있는 동안, 바람이 불고, 나는 뿌리없이 흔들리고

뿌리가 돋아 그 뿌리가 뽑힐 때까지 흔들리고

그러고도 나는 웃었습니다

 

얼굴도 없는 당신이 내게 말했었습니다

넌 일생 미움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그것은 사랑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거와 같았어,

순간 그곳은 호수가 되었습니다

저기, 쉴새없이 자맥질하는

오리가 보여요,

 

쏴버리고 싶다, 라고 생각하자

내꿈의 전지적작가가 내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총을 가져본 적이나 있었니,

너의 영혼은?

라고 말하자 참지 못하는 것은

내 영혼입니까, 오리입니까, 내 가져본 적도 없는 빈총입니까

 

방아쇠를 당겨본 일 없으나

나는 알고있습니다, 자각몽을 꾸는 자에게

총 따위는 필요 없어요,

자맥질하는 오리의 젖지 않는 꽁지털 빛깔이 곱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것들이 내가 한껏 탐낸 꿈이었으니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꿈은 끝나게 되어 있으니

 

그러니까, 안녕,

이라고 나는 말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안녕,

숱한 내 에필로그들

에필로그의 에필로그들, 의미도 없이 반복하여

그러니까, 안녕,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멸을 꿈꾸는 이면지  (6) 2010.03.16
천박해질 권리  (5) 2010.02.26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20050902 날씨맑음  (10) 2010.02.16
여행하는 남자  (4) 2010.02.03
살겠다,  (0) 2010.01.20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16

20050902 날씨맑음

2010.02.16 21:26 from paRamnésie

 

 

 

푸디토리움 - 그저 그렇고 그런 기억

 

 

헤어졌어,

 

간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 녀석이 아주 아주 드라마틱한 이별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소리가 덤덤하다 못해 명랑하다. 뻥치시네.. 진짜야, 3주 전에..

정말? 아니 왜, 너희 잘 지냈잖아.. 나또한 믿기 힘든 일이었어.


과연 그들의 스토리는 드라마에나 나올법했다.

요는 자신들의 의지가 아닌 채로, 여전히 사랑하는 채로

다른 불행이 갑작스레 불어닥쳐, 조각배 같은 사랑을 난파시킨 것이었다.

그들로선 불가항력일 것이었다.


어떡하니.. 받아들이기 힘들었겠다.


하지만 친구야, 정말 미안한데, 그 순간 나는 니가 부러웠어.

마음이 변해서 돌아선 게 아니니까, 싫어져서 손을 놓은 게 아니니까

그리고 말야, 아무 일 없듯 쏟아지는 햇살 아래, 수많은 인파 속에

미처 어찌할 수도 없이, 커단 눈물방울을 뚝뚝 떨굴 만큼

말만한 청년이 그렇게 서러이 울만큼

극적인 슬픔은 흔하지 않아, 아마 네게도 다시는 없는 순간일 거야.

그래서 치명적인 사랑은 멋지고, 이별은 더욱 그래.


내 슬픔이 아니라서 이렇게 말한다구? 그래.. 맞아.

나는 아직도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사랑도 모르고 이별도 모르고..

남들 이야기나 주워들으며 울고 또 웃어, 이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버거워.

그리고 한 가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말야, 어쩌면 그 모든 일이

그녀의 핑계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물론 그녀를 모르고 하는 얘기야..

아무도 그런 나쁜 거짓말로 이별하진 않겠지.


하지만 버젓이 이런 말을 끄적대고 있는 내 자신의 악랄함을, 조금쯤 즐기고 싶다면

너는 나를 이해해줄까?

그리고 너를 위로한답시고 다른 얘기만 엄청스레 떠들었던 그날.

드라마틱하지 못한 내 씁쓸한 스토리는 명함도 못내밀었지만..

그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 나는 비로소 인정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는 별것 아닌 기억에 매달렸고, 그 모든 것은 거짓

아니,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니었다고.

 

이 노래의 제목을 보는 순간, 불쑥 생각났었다. 4년전 일기.

울고불고 난리쳤던 이 커플은 그로부터 몇 년 후 결혼했다.

문득 궁금하다, 가사노동과 육아와 숱한 문제들로 맹수처럼 으르렁댈 때

헤어져 죽을 듯이 아파하던 그 날들의 기억은

가슴의 어느 쪽에 보관돼 있을까.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박해질 권리  (5) 2010.02.26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20050902 날씨맑음  (10) 2010.02.16
여행하는 남자  (4) 2010.02.03
살겠다,  (0) 2010.01.20
망각의 첫 순서  (14) 2010.01.17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10

여행하는 남자

2010.02.03 11:51 from paRamnésie

 

 

 

 

  여행하는 남자를 상상한다

 

  강박증처럼 잠시도 가만 멈춰있지 못하는 남자

  자기 생의 과제라도 되는 듯

  가는 곳의 모든 기둥들마다 그 여자의 이름을 새긴다

 

  살아서 다시는 함께 떠날 수 없을 여자의 이름을,

 

  그곳에 가본 적도 없는 그녀가

  영원히 그 낯선 기둥에 묶여있으리란 것은

  그만이 아는 범죄 같은 거였다

 

  이 범죄가 완전하다면 그녀는 때로

  낯선 곳에서 자기와 같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신기한 듯 손뼉이라도 칠지 모른다

  더더욱 완전하다면 그녀는

  그곳에 가보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언제까지?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르죠

  어쨌든 그녀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까지

  끌고 다닐 작정이에요

  어쩌면, 그녀가 나를 끌고 가는 걸지도

  더 이상은 못가, 내 쪽에서 먼저 주저앉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시겠어요?

  이건 처음부터

  그녀 쪽에선 멈출 수가 없는 여행이에요

  이것은 내 범죄이고, 내 형벌이고

 

  내 기억이니까,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에서 온 트랙백  (16) 2010.02.20
20050902 날씨맑음  (10) 2010.02.16
여행하는 남자  (4) 2010.02.03
살겠다,  (0) 2010.01.20
망각의 첫 순서  (14) 2010.01.17
연.결.돼.있.다.  (0) 2010.01.12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4

살겠다,

2010.01.20 16:03 from paRamnésie

                       

 

 

 

 

 

 

 

 

 

 

 

 

 

 

 

 

그런 말은 그럴 때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널 보니, 살겠다, 라니요

 

 

내게 겪게한 일이 정말로, 죽을 만큼, 당신에게 미안한 일이었나요

 

그 미안함 때문에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만큼?

 

아니요, 아니요

 

그런 건 어른들의 거짓말 베스트3 중 하나입니다

 

내가 동굴 속에서, 오래전 그자리에서 죽어간 뼈들과 인사하고 있을 때

 

당신은 패밀리레스토랑에서 귀여운 딸아이 입속에

 

피가 배어나는 미디엄의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 넣어주고 있던 걸요

 

만약에 그순간 나를 보았더라면

 

당신은 살겠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이 나를 죽이기로 작정하면 한주먹 꺼리도 아니란 것을, 당신 덕분으로 알게 된 사람한테

 

살겠다, 라니요

 

이제 내가 어떻게 살아가더라도 당신은 미안하다, 는 말만 앵무새처럼 백 번 하면 되는 것이죠

 

그 백 번을 다 채우면 당신은 대단한 뭔가를 깨달은 듯이, 인생은 자기만의 몫

 

이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죠

 

네네. 인생은 자기만의 몫, 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잠이드니 아침에는 비가 내립니다

 

쪽문 밖으로 팔을 내밀고, 비가 오니 살겠다, 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도

 

비가 들으면, 껄껄, 웃을 일이지요

 

당신은 나 때문에 죽지 않고, 나는 비 때문에 죽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아, 나는 비가 오니 살겠습니다.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50902 날씨맑음  (10) 2010.02.16
여행하는 남자  (4) 2010.02.03
살겠다,  (0) 2010.01.20
망각의 첫 순서  (14) 2010.01.17
연.결.돼.있.다.  (0) 2010.01.12
그녀는 더이상 여기 살지 않아요  (2) 2010.01.10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0

망각의 첫 순서

2010.01.17 18:45 from paRamnésie

 

 

 

 

 

 

 

 

 

 

 

 

 

 

 

 

 

 

 

 

 

 

 

 

 

  그거 알아요?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요

  제일 먼저 고유명사를 잊고, 그 다음에 보통명사를 잊고

  그 다음에 동사를 잊는대요

  일부러 순서를 지키기라도 하는 것처럼요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 상상만해도 멋지지 않아요?

  제일 먼저 당신 이름을 잊고

  그 다음엔 닳고 닳은 사랑이라는 말을 잊고

  그리고는 당신에게 잘 보이려 애썼던

  어쭙잖은 행동들을 다 잊는 거예요

  순서대로, 차근차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진심이든 뭐든 상관없지 않아요?

  제일 먼저 잊혀질 고유명사 주제에. 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모두, 고작 고유명사일 뿐이다

  그리고 진심으로는 단 한번도

  그런 병에 걸리기를 바란 적도 없는 것이다.

 

 

 

 

 

 

 

 

 

 

 

 

 

 

 

 

'paRamnés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하는 남자  (4) 2010.02.03
살겠다,  (0) 2010.01.20
망각의 첫 순서  (14) 2010.01.17
연.결.돼.있.다.  (0) 2010.01.12
그녀는 더이상 여기 살지 않아요  (2) 2010.01.10
당신만 몰라  (0) 2010.01.09
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