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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4 사람이 아니야 (6)

사람이 아니야

2010.03.04 14:38 from morceAu
 

01  사람이 아니야, 그는.


알고 있어? 전혜린의 마지막 편지.

장 아제베도.

나를 살게 해줘.. 라고 그녀는 죽을 듯이

현존하지도 않는 소설 속의 사람에게

말을 했던 거라고.



02 누군가와 만났다가 헤어질 때면, 그녀는 안녕, 하고


간결하게 인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냉정하고 단호한 사람이었어, 하고 누군가는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별의 순간을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습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기억들이 너무 무거워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의식적으로 그것을 멀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좋고 싫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취향들이

항상 변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그녀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고 그의 의견을 부정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얘기했고,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요구했으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구분했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합당한 이유를 찾아냈다.

 

하지만 간혹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곤 했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아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자신에게조차 삼인칭으로 남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모순투성이의 그녀를,

당신은 당신 마음껏 채색하고 좋을 대로 기억해주기 바란다. 하지만 정말로, 사실은,

 

그녀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아주었던 단 한 사람이 있어,

'나는 너의 영혼을 사랑했어' 라고 고백해준다면,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할지도 모른다.

 

황경신  ‡  밀리언 달러 초콜릿

 

 

03 어째서 마음이 아픈 것이냐,

 

아플 이유가 없는데, 아픈 이유를 정의할 수 없는데

아프다고 말할 명목이 없는데

그런데도 쓰고있다,

아프다고.

마음이란 이토록 작위적이어서

작위, 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만큼 뻔뻔하기도 한 것이어서

그 나종의 것도 결국은 작위였다고

그게 내 유언이 될 것만 같아서

나는 또 진심이라고 믿는 이상한 편지들을 쓰면서

 

죽은 척 한다, 실눈을 뜨고서.

 

 

04 예민한 사람이 아니에요

 

한심한 시간도 곧 지나가요, 나는 믿어요.

믿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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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흰돌고래 2010.03.05 01:19

    저도 믿어요 .

    02 황경신작가의 글.. 참 좋아요 :) 초콜릿우체국, 재미있게 읽었어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05 09:16

      돌고래님, 고마워요 :)
      믿어 줄게요, 믿어 주세요.
      선거 후보자 멘트 같군요. 히힛.

      남다르지 않은 단어로, 사람 마음 들었다 놓는 사람.
      황경신 좋아요. 저는 프로방스 여행기도 참 좋았어요.

  2. addr | edit/del | reply 클리티에 2010.03.05 17:22

    Time will tell..

    저도 믿어요. 믿어줄께요..

  3. addr | edit/del | reply 旅인 2010.03.08 12:47

    사소한 통찰력.
    때론 잘라진 글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 작가의 글보다도, 그 작가의 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라낼 수 있는 그 예민함이 때론 너무 부럽습니다.

    저는 황경신이라는 사람처럼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지만, 저렇게 느낄 수 있는 사소한 통찰력이 부럽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그녀(그)가 느낀 슬픔이나 아픔을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잠시 저의 외로움이나 아픔으로 조금 삭일 수는 있었을텐데...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3.10 01:59

      사소한 통찰력이란, 사소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그런 통찰력일 것 같습니다.
      저도 몹시 부러운 것 중 하나입니다.

      내가 느낀 외로움이며 아픔이, 누군가의 글을 통해서
      말끔히 정리되는 순간, 분명 그것이
      증폭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면
      삭여져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