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 December
엄마 생일이 돌아오면 나는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겨울의 시작이에요, 음력 십이월 이십오일.
이쯤이면 늘 늦은 눈이 한바탕 내려주어서, 겨울이다, 하고 나는 뒤늦게 느끼는 것인데
달력 위의 날짜는 분명 이월을 가리키고 있네요.
겨울이 끝나갈 때쯤 겨울이 시작되고, 봄이 끝나갈 때쯤
봄이 시작되는 사람, 그러니 모든 것이 끝나갈 때쯤엔
모든 것이 시작될 것도 같아요.
그런 이상한 달력을 믿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해 첫눈은 십이월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너무 늦은 눈.
엄마, 기억나요? 음력의 날들이 살금살금 그렇게 흘러가는 걸
우리는 마당가에 서서 나란히 지켜볼 뿐이었는데요,
아무 일도 아니었던 그 순간이 갑자기 왜 떠올랐을까요.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을 때 나는 지겨워 참을 수가 없었는데,
모든 것이 쏜살같이 스쳐가려고 할 때 나는 무서워 견딜 수가 없어져요.
양력 말고 음력이 있는 건, 아마도 그 무서움을
덜어주려는 걸 거예요.
음력 십이월의 날들이 이렇게 흘러갑니다.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면
이 겨울의 마지막 눈이 예고도 없이 내려줄 것 같은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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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추운게 싫어여.
왜요 꼬뮌님,
눈사진이 체감온도를 떨어뜨렸나요?ㅋ
사진들이 참아련하고 좋습니다..
몇년전에 찍은 사진인데,
오랜만에 꺼내보니 더 그런 듯해요 :)
필름이 뭐죠?
색감이 정말 좋네요^^
찾아보니 포트라 160vc 였네요.
색감은 좋지만, 비싸서 가끔만 쓰는 필름 :)
슈풍크님의 사진들은 하나하나 새벽감성이 실려 있는듯 해요. ^^*
파란 대문 사진이 참 제 마음을 이끄네요.. 어렸을적 기억도 나고 말이죠..
새벽이라 하시니.. 맑고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연상 되어서 무척 기분이 좋아져요.
저런 대문이 달린 집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색깔이 예쁜 대문들은 꼭 찍게 돼요. 괜히 :)
어릴 적엔 경남 창원에 살아서 눈을 보기가 참 힘들었어요. 구정이 되서 외갓집이 있는 서울에 와서야 눈을 보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2월 즈음엔 항상 눈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ㅎ
저두요 :) 그런데 눈 대신 비가 내리는군요.
오랜만에 맞는 비여서 좋기도 한데
마음이 무척 가라앉아버리네요.
봄오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눈이 와줬음 좋겠는데..
애틋한 글이 참 좋네요. 잘 봤습니다.^^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