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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31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2)

  01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보면 걸다보면
 

  시월과 십이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병률  ‡  기억의 집

 

 

  02 어떡하고 사는지 궁금했나요?

 

  내 글속에 언뜻 당신이 보여서, 왠지 모를 존재감이 느껴지나요?

  하지만, 아직도 내가 좋나요?

  라고 물으면 질겁할 거면서. 하하하. 농담. 농담이 너무 하고 싶네요.

  농담할 수 없는 사람한테, 아주 무례한 농담을.

 

 

  03 누가 뭐라 생각하든, 쓰고 싶은 걸 쓰면 되지, 라고 스스로를 주입식으로 교육한다.

 

  이게 과연 쓰여질 필요가 있는 것인가, 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쓸 이유가 없어지니까.

  마음 속에 새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쇼핑이 하고 싶다.

  7만 6천원이라거나, 9만 2천원이라거나 하는 가격표들을 집중해서 읽고 있으면,

  이 구차한 기분도 깔끔하게 수치화될 것 같다. 너무 비싸군. 하고 내려놓으면 이상 끝.

  이상 끝, 이면 좋았을 미뤄둔 일의 목록 원투쓰리포.

  기어코 일요일 밤을 꼴딱 새려고 커피 두잔째 원샷해주시고.

 

 

  04 자정 이후 감상 자제 리스트 추가

 

  데미안라이스 9 crimes 뮤비.

  의미를 생각하기 앞서, 그여자 얼굴이 꿈에 나올 것 같아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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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서정적자아 2010.02.01 09:01

    이병률 시인.. 시 아름답군요. 이 시인의 다른 시들이 궁금해집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2.01 13:17

      시인이자 방송작가이면서, 사진도 좋고 여행글도 좋고..
      제게는 '엄친아' 격이신 분ㅋ
      그의 시들은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의 균형을
      아주 잘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느낌으로 이성복, 김경미 시인이 떠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