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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2 날씨맑음

2010.02.16 21:26 from paRamnésie

 

 

 

푸디토리움 - 그저 그렇고 그런 기억

 

 

헤어졌어,

 

간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 녀석이 아주 아주 드라마틱한 이별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소리가 덤덤하다 못해 명랑하다. 뻥치시네.. 진짜야, 3주 전에..

정말? 아니 왜, 너희 잘 지냈잖아.. 나또한 믿기 힘든 일이었어.


과연 그들의 스토리는 드라마에나 나올법했다.

요는 자신들의 의지가 아닌 채로, 여전히 사랑하는 채로

다른 불행이 갑작스레 불어닥쳐, 조각배 같은 사랑을 난파시킨 것이었다.

그들로선 불가항력일 것이었다.


어떡하니.. 받아들이기 힘들었겠다.


하지만 친구야, 정말 미안한데, 그 순간 나는 니가 부러웠어.

마음이 변해서 돌아선 게 아니니까, 싫어져서 손을 놓은 게 아니니까

그리고 말야, 아무 일 없듯 쏟아지는 햇살 아래, 수많은 인파 속에

미처 어찌할 수도 없이, 커단 눈물방울을 뚝뚝 떨굴 만큼

말만한 청년이 그렇게 서러이 울만큼

극적인 슬픔은 흔하지 않아, 아마 네게도 다시는 없는 순간일 거야.

그래서 치명적인 사랑은 멋지고, 이별은 더욱 그래.


내 슬픔이 아니라서 이렇게 말한다구? 그래.. 맞아.

나는 아직도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사랑도 모르고 이별도 모르고..

남들 이야기나 주워들으며 울고 또 웃어, 이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버거워.

그리고 한 가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말야, 어쩌면 그 모든 일이

그녀의 핑계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물론 그녀를 모르고 하는 얘기야..

아무도 그런 나쁜 거짓말로 이별하진 않겠지.


하지만 버젓이 이런 말을 끄적대고 있는 내 자신의 악랄함을, 조금쯤 즐기고 싶다면

너는 나를 이해해줄까?

그리고 너를 위로한답시고 다른 얘기만 엄청스레 떠들었던 그날.

드라마틱하지 못한 내 씁쓸한 스토리는 명함도 못내밀었지만..

그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 나는 비로소 인정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는 별것 아닌 기억에 매달렸고, 그 모든 것은 거짓

아니,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니었다고.

 

이 노래의 제목을 보는 순간, 불쑥 생각났었다. 4년전 일기.

울고불고 난리쳤던 이 커플은 그로부터 몇 년 후 결혼했다.

문득 궁금하다, 가사노동과 육아와 숱한 문제들로 맹수처럼 으르렁댈 때

헤어져 죽을 듯이 아파하던 그 날들의 기억은

가슴의 어느 쪽에 보관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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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oopoonk 트랙백 0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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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느림보 2010.02.16 23:31

    목소리 좋네요. :) 물론 음악도!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2.17 18:14

      그렇죠? :)
      이런 목소리, 이런 템포, 이런 사운드
      다다 너무 좋아해요.

  2. addr | edit/del | reply 흰돌고래 2010.02.17 00:11

    어느 쪽에 보관돼 있을까요?

    잔잔해요 -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2.17 18:15

      정말로 묻고 싶어요,
      그마음 어따 뒀니? 라고요. 헤헤.

  3. addr | edit/del | reply 엘군 2010.02.17 04:18

    그 기억이야말로,
    사랑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겠지요..

  4. addr | edit/del | reply 고무풍선기린 2010.02.17 11:36

    아주 가끔식 제 주위 사람들에게도 헤어짐이 있습니다.

    어떻게해서 그걸 알게되면, 저는 그냥 잘됐다는냥
    '잘해어졌어~' 내지는 '바람직해~'를 외칩니다.
    특히, 친한 사람들일수록 더 합니다.

    헤어짐에 슬퍼하거나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외적 동조에 지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죠.

    친구의 정서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 정서를 나눌아는 것이 진짜 위로요, 동조 입니다.

    물론, 슈풍크님은 진작에 그 경지에 도달하신 것처럼
    보이지만요.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2.17 18:20

      사연이 하도 기구하여.. 동조.. 해주긴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한때 울고불고한
      가벼운 헤프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 그런 경지에 있지 못한 걸요.
      힘들겠다.. 해놓구서,
      사실 니가 부러웠어.. 혼잣말하는
      인간인 걸요.

  5. addr | edit/del | reply 꼬뮌 2010.02.21 02:21

    이따금 생각하는 것이지만,
    분명히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가상의 공간 속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때때로 영혼이나 이성이나 혹은 그밖에 마치 육체와는 무관해보이는 어느 신비스러운 단어들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느 가상의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지, 그것은 제가 알바가 아니고,
    기억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우리 신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때때로 상처가 남는다면 그 상처에,
    제 생각에는 우리의 기억은 우리의 피부에 골고루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addr | edit/del 슈풍크 2010.02.21 03:51

      저는 때로 가슴이 그냥 신체기관이 아니라
      마음이 담겨있는 공간 같이 느껴져요.

      정신, 이 아니라 신체에 남는 기억이라..
      궁금하고 흥미로운 이야깁니다.
      꼬뮌님도 그에 관해 독특한 세계관이 있으신 듯해요.
      언제 포스팅 한번.. :)